알바트로스김규대

[스크랩] 아름다운 청년 ‘김규대’ /한려투데이 9월26일

정현심리연구소&고성힐링센터 2008. 9. 27. 08:31

아름다운 청년 ‘김규대’
조국을 위해 두 번 뛴 자랑스러운 통영인, 진정한 UDT 대원

낙하산 훈련 중 사고… 베이징패럴림픽 휠체어 육상 동메달

25살 통영의 젊은 사람 ‘김규대’는 장애인이다. 그는 너무나 아름다운 청년이다. 베이징 패럴림픽 휠체어 육상 400m 계주 동메달을 목에 걸고 이제야 우리들 가까이 다가왔다. 시리도록 가슴 아리고, ‘승리’ ‘감동’ ‘드라마’ 그 어떤 수식어로 표현할 수 없는 젊은 통영인 김규대가 우리들 가슴 속으로 들어 온 것이다.

규대는 1984년 1월 17일 통영에서 태어났고 충무초교, 통중, 통영고를 졸업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시절을 회상하는 어머니는 “그저 너무나 착하고 연약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린 규대의 몸속에는 언제나 열정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날, 내성적이며 연약하다고만 생각했던 규대가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무대에 올라가 막춤(?)을 선보인 건 부모님에겐 신선한 자극이었다.

규대의 열정은 음악적 재능에서도 엿볼 수 있다. 트럼펫연주는 수준급이며 드럼연주는 통고재학 시절 그룹사운드를 결성,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공연까지 했을 정도이니 짐작이 가능하다.

규대는 2003년 대구가톨릭대학교에 입학했다. 봉사자로 거듭나기 위해 ‘신부’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러나 신부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도 만만한 일도 아니었고 충분한 사회생활과 경험을 비축한 후 신부의 길을 모색하기로 하고 2학년 휴학을 한다. 아름다웠던 규대가 사랑스러웠던 규대가 우리들 곁으로 다가오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경험은 특수부대 ‘UDT·SEAL’이었다. “구체적 이유는 없으며 이왕 가는 군대 빡센 곳으로 가자는 생각, 통영 바닷가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며 키워 온 해군에 대한 동경심이 지원배경이다”고 규대는 말한다. 그러나 통영인 규대의 가슴속에 열정이 없었다면 특수부대에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체 지원자 중 40%만이 통과한다는 24주간의 특수전 교육훈련. 규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지옥훈련이자 하루를 버티는 것도 역부족일 만큼 고통스런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132시간 한숨도 자지 않고 구보와 체조, 고무보트 조정훈련 등 고강도 훈련을 모두 소화해 내야 하는 이른바 ‘지옥주’ 기간은 자기와의 싸움이었고 이를 악문 덕분으로 24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녹색 베레모를 쓴다. 조국의 아들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우리 규대의 열정의 ‘첫 라운드’는 여기까지였다. 2004년 12월 낙하산 강화훈련, 자신의 네 번째 강하훈련이었다. 자동산개 돼야 할 주낙하산 고장, 다행히 펼친 보조낙화산은 줄이 꼬이고 말았다.

사고… 지척을 분간 못하는 어둠이 찾아왔다. 그의 ‘꿈’ ‘이상’ ‘끓는 피’ ‘황금시대’ ‘사랑’ ‘아이스크림’ 달디 단 ‘청춘의 1라운드’ 그 끝은 절망이었다.

2008년 9월 9일 ‘궈자이티창’에서 동메달을 딴 한국 선수들이 환호하는 관중에게 손을 들어 답례 하고 있다. 그 속에 아름다운 통영인 규대가 있었다.

21살의 꽃다운 나이에 반신불구가 된 규대가 휠체어를 타고, 꽃다발을 손에 들고 웃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통영인 김규대가 ‘열정 2라운드’ 서막을 알리고 있었다.

규대의 휠체어 육상 국가대표 발탁 및 베이징 페럴림픽 출전은 가히 기적적이었다. 2005년 병상에서 우연하게 ‘서울국제 휠체어 마라톤 대회’를 보고 열정의 젊은 규대는 스스로에게 명령한다. 운동을 시작하기로, 남의 일로만 생각됐던 휠체어와의 인연을 승화시키기로….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새로운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대한민국 체육사에도 없는 최단시간 국가대표 발탁의 과업을 이룬다. 무엇이 그의 열정을 뒷받침 하고 있는 것일까? 규대는 말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난 이 일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우리는 규대가 1년간의 병상 생활, 끊임없이 반복됐던 수술, 5월의 꽃잎처럼 흩날렸던 자유, 사랑의 패스워드였던 청춘을 송두리째 빼앗기고도 당당하게 일어선 ‘힘의 원천’이 궁금하다.

규대는 이렇게 말한다. “사고로 다친 뒤 꿈을 꿨습니다. ‘UDT·SEAL’에 복귀하는 꿈을 요. 단 한 번도 정말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전 수송기 밖으로 몸을 날릴 것입니다. 전 ‘UDT·SEAL’ 대원이니까요”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 없었다면 가능 했을까? 사고 이후 ‘어머니는 가슴으로 울었다’ ‘아버지 또한 가슴속으로 눈물을 감췄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기에. 두 살 아래의 남동생은 국가유공자가족의 병역혜택을 거부하고 이번에 소위로 임관했다.

형이 못 다한 국가를 위한 봉사의 몫을 위해, 어머니는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문예창작을 전공한 어머니는 대학원에 다니며 사회복지학을 다시 공부하고 있다. “너처럼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 ”어머니는 말하고 있다.

규대의 목표는 명징하다. 2012년 런던 패럴림픽 금메달 획득, 공부 그리고 ‘한의사’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전체 장애인 중 후천적 장애인의 비율이 89.4%로 조사된 것에 비추어 우리는 각양의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청년 규대처럼 그 삶을 명징하게 이끌기는 어렵다. 그래서 규대가 아름다우며 자랑스러운 통영인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김규대 선수의 백일 때 모습


'UDT.SEAL' 훈련을 마치고

베이징 패럴림픽에서 동메달을 수상하고, 환호하고 있는 관중에게 답례하고 있다

 

출처 : 들메사랑
글쓴이 : 사과꽃향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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